고래별, 웹툰 완결. 조국을 위한 애달픈 사랑 이야기
나윤희 작가님의 웹툰, <고래별>이 완결됐다.
이름이 너무 예뻐서 눈이 한 번 갔고, 그림체가 예뻐서 또 한번 눈이 갔다.
하지만 스토리 설명에 나온 독립운동가란 단어에 쉽게 고래별을 클릭할 수가 없었다.
독립운동가라는 그 단어만으로도 이 만화가 어떤 흐름으로 전개될런지는 뻔히 보였고, 유쾌하지만은 않을 내용이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목과 그림체는 묘한 끌림이 있었다. 한 달, 두 달, 미뤄두고 있던 고래별을 작년 이맘때 드디어 용기를 내어 클릭했다.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
고래별은 조국의 독립을 위한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인 수아를 인어공주 모티브와 절묘하게 섞어 놓은 설정이 너무 매력적이다. 처음에는 수아에 캐릭터에 의아함을 가졌다.
그냥 어느 집안의 몸종으로 일하는 아이. 그러다 갑작스레 죽음을 맞이하는 수아가 모시던 아가씨의 내용이 초반에 전개되는데 아가씨의 죽음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걸까 싶었다. 그리곤 내가 얼마나 뻔한 이야기들에 사로잡혀 있는 것인지 느꼈다. 나는 친일 집안이던 아가씨가 수아와 함께 독립운동가인 남자 주인공 의현을 만나 같이 독립운동가로 성장하는 내용을 어느 정도 상상하면서 내 멋대로 스토리를 그려보며 이야기를 봤던 거다.
그러나 아가씨는 죽음을 통해 수아를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게하는 장치일 뿐이었다.
운명처럼 독립운동가인 의현을 만나 그를 치료하며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수 있던 것은 아가씨의 죽음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몸종인 수아는 자유를 가질 수 없었으니까.
아가씨의 죽음은 비극이었고, 수아의 자유 또한 스스로 다짐하고 쟁취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수아는 앞으로 나아간다.
의현을 만나기 위한 과정에서 수아는 인어공주처럼 목소리를 잃게 된다.
수아의 인생이 너무 기구하다는 생각에 그녀의 목소리를 잃게 만든 캐릭터가 참 미웠는데, 그들이 독립운동가라는 사실에 혼란스러웠다. 이런 이야기들을 보다 보면 어떤 캐릭터도 미워할 수가 없다. 뒷얘기가 나오지 않는 100% 악당 같은 캐릭터도 작가가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그냥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위해 살아가는 캐릭터로 변모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목소리도 잃고, 글도 쓸 줄 모르던 몸종인 수아는 의현을 다시 만나 새로운 세계로 휩쓸린다. 그를 연모하고, 그를 통해 글도 배우고, 독립운동가들의 생활반경안에서 생활하게 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의현을 통해, 독립운동가들을 통해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아니, 사실은 의현을 연모하는 마음으로 그가 애달프게 사랑하는 것을 같이 지키고 싶었던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수아는 그저 힘 없는 한 명의 연약한 소녀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선택할 수 있게 되는 성장 캐릭터다.
수아가 겪고 나아가는 모습을 보면 인어공주 이야기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의현. 수아를 통해 목숨을 구제받고 살아 있는 매 순간 끊임없이 조국을 사랑하는 남자.
누구도 미워할 수 없는 따뜻한 사람. 그림체 만으로도 이 캐릭터의 성격이 얼마나 따뜻한지 느낄 수 있게 만들어주는 작가님이 정말 너무 대단하다. 온화하고 따뜻하지만 슬퍼 보이는 저 웃음이 기억에 강하게 남는다.
아버지가 친일파였기 때문에 부족함 없이 공부하고 보호받던 의현은 나 아닌 다른 조선인들이 어떤 대우를 받는지 그 실상을 눈으로 확인한 후 큰 충격을 받는다. 그러나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조국을 더욱 애달프게 사랑하게 되어 독립운동가가 된다. 친일파인 아버지, 조국, 동료들 사이에서 가장 고통받는 인물이다.
내가 배불리 잘 사는 상황에서 이런 선택을 할 수 있다는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나는 내가 갖지 못한, 할 수 없는 것을 볼 때 눈물이 난다.
의현이 조국과 동료들을 위해 배신자로 낙인 찍혔을 때, 수아를 위해 마음을 접을 때, 자신을 사랑하는 일본 여자에게조차 따뜻한 거절의 말을 전할 때 조차도 나는 의현이 너무 안쓰러워 눈물이 났다.
해수는 너무 날카롭고 불편한 캐릭터였는데, 어느 순간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가족을 잃고 그래도 이 악물고 살아 왔을 해수의 삶이 애처롭다.
독립운동을 위해 독하게 마음먹고 살아왔을 그에게 수아는 어떤 의미였을까?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는 사실을 깨닫고 의현을 향한 수아의 마음과, 수아를 향한 자신의 마음이 같음을 느끼고도 어떤 것도 할 수 없던 해수. 친형제 같던 의현을 믿고 변절자가 아닌 것을 알지만, 때로는 그가 변절자이길 바랬던 해수의 그 마음이 너무 짠했다. 내가 해수였어도 그럴 것 같으니까.
내 마음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선 타인의 부도덕함을 바랄 수 밖에 없는 해수가 이해된다.
해수의 과거 얘기는 정말 너무나도 잔인하다. 너무 슬프고 분노가 올라온다.
고래별을 보면 일본인들의 잔혹함에도 치가 떨리지만, 친일파에 대해서도 다시 곱씹게 된다.
나의 비겁함에 그들의 비겁함까지도 이해한다 생각해 봤지만, 굳이 자신의 평안한 삶을 위해 같은 조선인을 고발하고 고문하고 핍박하며 살아야 했을까, 왜 그렇게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을까.
고래별은 같은 목표를 가지고도 사람들이 얼마나 다양한 행동을 하는지 잘 표현되어 있어서 좋았다.
누군가는 정말 순수하게 조국 그 자체를 사랑하고, 누군가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또는 사랑하는 이를 지키기 위해 같은 목표를 가지고도 서로 다른 선택으로 상처 입히기도 한다. 그것이 참 안타깝지만 이게 진짜 현실을 반영한 이야기인 것 같아서 나는 그게 나쁘지 않았다.
고래별을 보며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숭고한 희생 덕에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인지 또 한 번 느꼈다.
세상엔 정말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다.
내 핏줄에 바닷물이 흐르는 것처럼,
당신의 몸속에는 일평생을 앓는 애달픈 이가 있다는 것을
나 이제는 알아요.
왜 모두들 그냥 살아지지가 않는 건지,
이깟 것은 중하지 않다는 듯 몸을 내던지는지..
무섭고 독한 눈을 하고서는 그저 부딪히듯 스러지는 이유를
이제는 압니다.
그것을 안 기쁨이 있으니, 혹여라도 나를 위해 서러워 하지는 마오.
당신은 언젠가 애달픈 이의 품에 안기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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